Oriana 2015. 6. 10. 02:42




"한스, 뭐 좋은 장난감 좀 만들어줄 수 없어?"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




 

어느 마을에 한스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어. 한스는 장난감을 만드는 장인이었는데, 마법을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장난감을 만들어내곤 했지. 한스가 만드는 "한스 씨의 놀라운 장난감"들은 마을 어린이들이 꼭 하나씩은 가지고 싶어 안달하는 것들이었단다.

하지만 한스는 행복한 고양이는 아니었어. 그는 사실 악마랑 거래한 고양이였거든. 한스는 똑바로 서서 하늘을 보며 걸어다닐 수도 있고, 손으로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인간들이 너무 부러웠어. 그래서 악마랑 거래를 한 거란다. 악마는 달콤한 목소리로 한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말했어. 뒷다리로 서서 걸어다니는 능력,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섬세한 앞발과 마법 솜씨, 마이스터라는 칭호와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공방이 딸린 번듯한 장난감 가게까지. 너무나 좋은 조건에 한스는 대가로 뭘 줘야 하는 걸까 하고 두려워졌어. 

"악마는 계약의 대가로 영혼을 빼앗아간다던데, 너도 내 영혼이 가지고 싶니?" 

한스가 조심스럽게 묻자, 악마는 깔깔 웃으면서 되물었어. 

"고양이는 영혼이 아홉 개라고 하던데, 하나쯤 나한테 줘도 괜찮지 않을까?"  

한스가 겁에 질려서 수염을 빳빳하게 세우자, 악마는 농담이라고 하면서 진짜 조건을 말했어.

" 한스야, 네가 사람처럼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는게 누구 덕분이지?" 

한스가 대답했어. "그야 네 덕분이지." 

"그래! 그러니까 네가 만드는 물건들 중 몇 개는 내가 가져도 되겠지? 난 네가 나한테 필요한 장난감들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뭐야, 알고 보니 정말 시시한 대가잖아? 이제 악마가 준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게 될텐데, 그 중 몇 개를 주는게 뭐 대단한 일이겠어. 한스는 악마에게 조건을 수락하겠다고 했고, 곧 두 다리로 서서 걸어다닐 수 있는 특별한 고양이가 되었단다. 꿈으로만 그리던 장난감들을 만들어내면서 한스는 한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로 살았어.

그러던 어느날, 악마가 한스를 찾아왔어. 꼬마 아가씨에게 3시가 되면 티타임을 갖는 태엽인형을 만들어주던 한스는, 자기에게 새 삶을 준 악마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반갑게 맞으러 나갔지. 악마도 반가운 표정으로 한스에게 말했어. 

"오랜만이야, 한스! 네 장난감 소식은 지옥에도 들려오더라. 우리 아들도 하나 가지고 싶어하던데!" 

한스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지. "그럼! 내 장난감은 최고야. 아들이 뭘 갖고 싶어해? 말하는 대로 만들어 줄게." 

악마는 기뻐하면서 말했어. "병정놀이 세트를 만들 수 있어? 기왕이면 계급장이 진짜처럼 멋있었으면 좋겠어. 아들이 아주 좋아할 거야!"

 한스는 정성을 들여서 장난감 병정을 한 소대나 만들어 줬어. 놋쇠로 만든 계급장이 번쩍번쩍 빛날 뿐 아니라, 소대 열중 쉬어! 하고 명령을 하면 진짜로 척척 움직이며 쉴 정도로 정교한 병정들이었지. 악마가 고맙다고 하면서 장난감 소대가 든 상자를 짊어지고 떠나는 걸 한스는 뿌듯한 얼굴로 바라봤어. 장난감을 너무 오랫동안 만드느라 앞다리도 아프고 재료비도 많이 깨졌지만, 한스는 악마에게 좋은 선물을 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

악마는 몇 달 후에 또 한스를 찾아왔어. 악마가 약간 슬퍼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마음씨 착한 한스는 신경이 쓰였단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말도 마, 한스." 악마는 한숨을 내쉬었어. 

"네가 지난번에 만들어 준 병정 장난감 있지? 우리 아들이 정말 좋아해서 밤에도 끌어안고 잘 정도인데, 친구들한테 자랑한답시고 보여줬더니 너도나도 빌려간다고 한두 개씩 가져가고는 오리발을 내밀더래. 벌써 두 분대나 없어져 버렸어." 

한스는 자기 일처럼 화를 냈어. "못된 놈들! 지옥에나 갈 놈들!" 

한스는 풀죽은 악마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는, 공방에 틀어박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어. 공방에서 나온 한스의 팔에는 어린이 키만한 크기의 진짜같은 악마 인형이 세 개 안겨 있었어.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 인형들이야. 지난번에 준 병정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말도 잘 듣지!" 한스는 인형들을 악마에게 안겨주면서 말했어. 

"이 인형들이 네 아들의 충실한 부하가 되어줄 거야." 

악마는 너밖에 없다고 한스를 치켜세우며 인형들을 업고 지옥으로 돌아갔어. 한스는 예상외의 지출 때문에 사흘 내리 푸줏간 주인에게서 외상으로 고기를 사야 했지만, 왕처럼 떠받들어 주는 인형 친구들 덕분에 아들이 기운을 차렸다는 악마의 편지를 읽고 마음을 달랬어. 

악마는 몇 주 후에 또 한스를 찾아왔어. 악마는 아들이 요즘 솔로몬 놀이에 맛을 들인 것 같다고 말했지. 

"솔로몬 놀이가 뭐야?" 한스가 물어봤어. 

"지옥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야. 예쁜 장난감을 가져와서 친구 한 명한테 주는데, 가지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있으면 장난감을 가져온 아이가 누구한테 줄지 맘대로 정할 수 있대. 우리 애도 솔로몬 노릇이 한 번 해 보고 싶은가봐! 한스, 뭐 좋은 장난감 좀 만들어 줄 수 없어?" 

한스는 그러마고 대답을 했어. 지옥 어린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 한참 생각을 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아서, 그동안 재미삼아 만들어 뒀던 작은 장난감들을 종류별로 큼지막한 가방에 가득 담았어. 그것만으로는 좀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놋쇠 뱃지를 단 법복과 판사들이 쓰는 하얀 가발을 흉내낸 모자에 앙증맞은 의사봉까지 만들어서 넣어주었지. 악마는 뭘 이렇게 많이 담아줬냐고 싱글벙글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며 지옥으로 돌아갔어. 한스는 팔아야 할 장난감들을 한꺼번에 줘 버린 바람에, 푸줏간뿐 아니라 빵가게와 우유 배달부에게도 외상을 달아야만 했어. 

악마가 네 번째로 한스를 찾아온 건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어. 한스는 외상값 때문에 고민하던 참이라 이번에는 그다지 악마가 반갑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 

"어휴, 내 말 좀 들어봐." 악마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어. 

"글쎄, 한스 네가 만든 장난감이 애들 사이에서 인기 폭발이지 뭐야! 그렇게 많이 넣어줬는데도 우리 아들이 의사봉 몇 번 휘두르기도 전에 가방이 텅 비어버렸어." 

"뭐라고! 설마 또 장난감을 달라는 건 아니겠지?" 

한스가 꼬리를 바짝 세우며 말하자, 악마는 약간 언짢은 목소리로 대꾸했어. 

"왜, 내가 필요한 장난감은 만들어 준다는 조건이었잖아?" 

"하지만 며칠 전에 너무 많이 줘버리는 바람에 남은 장난감이 없어! 당장 팔아야 할 장난감도 부족할 정도라고." 푸줏간 주인, 빵가게 아주머니, 우유 배달부...외상값을 갚아야 할 사람들 얼굴이 한스의 머릿속에 어른거렸어. 

"한스, 한스. 그렇게 초조해하지 마! 아무렴 내가 무작정 장난감들을 뺏어가려고 왔겠어? 난 그렇게 매몰찬 악마가 아니라구!" 한스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악마가 달래듯이 말했어. 

"지금까지는 공짜로 받았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돈을 주고 살 테니까. 응? 그러면 됐지?" 

"돈을 주고 사간다고...?" 

"그래! 네 장난감이 지금 지옥에서 인기가 많으니까, 질은 조금 낮추더라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팔면 마을 아이들한테 깨작깨작 파는 것보다 훨씬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악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선불금이라며 한스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주고 갔어. 한스는 일단 그 돈으로 당장의 외상값은 갚을 수 있었지.

악마는 다음날부터 매일매일 찾아왔어. 찾아와서는 지옥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장난감 목록을 들고 죽 읊었지. 한스는 정신없이 장난감을 만들었어. 여태까지는 장난감 하나하나를 예쁘게 장식하고 독특한 기계장치를 고안하느라 장난감 만드는 게 즐거웠는데, 이제는 서로 비슷비슷한 장난감을 빨리 적당히 만드느라 공방에 있는 시간이 괴롭기만 했어. 마을 아이들이 쇼윈도에 진열된 예쁜 장난감을 보고 가게에 들어와도, 그런 장난감은 이제 만들어줄 시간이 없었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걸 구경하는 게 삶의 보람이었는데, 지옥으로 보낸 장난감들은 누가 가지고 놀아주고 있는지 한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한스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이렇게 힘들고 바쁘게 장난감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가게에 외상을 달아야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거야. 공방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예전만큼 식사에 신경을 못 쓰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요 며칠간 수프에 빵조각만 적셔 먹은 건 푸줏간과 치즈 가게, 생선 가게에 외상값을 못 치러서인 게 확실하니까. 혹시 악마가 장난감에 치러주는 값이 너무 적은 건 아닐까? 한스는 넌지시 악마한테 이 얘기를 꺼내봤는데, 악마는 원래 계약대로라면 공짜로 받아야 하는 걸 돈까지 줘가면서 사가 주고 있지 않느냐고 짜증을 낼 뿐이었어. 정 그만두고 싶으면 다시 네 다리로 걸어야 하는 평범한 고양이로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지.

이제 한스가 개성있는 장난감을 만들 때는 악마가 특별히 아들한테 줄 장난감을 부탁할 때뿐이었어. 악마의 아들은 정말 신기한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싶어했어. 가만히 앉아서 어느 집이든 들여다볼 수 있는 망원경, 종이 위에서 휘리릭 돌리면 쓰여 있는 글의 내용이 마음대로 바뀌는 깃펜, 마음에 안 드는 친구 등짝에 붙이면 큰 목소리로 "얘가 그랬대요! 얘가 그랬대요!"하고 외치는 작은 인형, 사람이 타지 않아도 알아서 날아다니는 멋진 비행기......슬프게도 한스는 그런 장난감들을 만드는 것조차 더 이상 즐겁지 않았어. 악마는 그런 장난감들에는 돈을 쳐주지 않았거든. 옛날처럼 장난감에 예쁜 칠을 하거나 작은 톱니바퀴들로 정교한 장치를 만들면서도 한스는 끊임없이 가게들 생각을 했어. 이 장난감을 만들 시간에 차라리 지옥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많이 만들면 외상값 갚을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먼 옛날에 한스는 털이 희고 뚱뚱한, 풍채 좋은 고양이였어. 하지만 이제 풍성하고 윤기 흐르던 털은 생기를 잃었고,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서 멀리서 보면 푸르죽죽하다는 느낌이 들게 되었어. 장난감을 만드느라 지친 몸과 외상값 생각에 예민해진 신경을 달래기 위해 마시게 된 술 때문에 코는 빨갛게 물들어서 파란 낯빛을 더 도드라지게 했지. 매일같이 한스네 집에 찾아와 장난감을 내놓으라고 닦달해대는 악마는 한스가 작은 인형 하나라도 물량을 못 맞추면 장난감 병정들을 시켜서 한스의 발목을 콕콕 찌르게 했어. 그럴 때면 한스는 한숨을 내쉬며 작업복 앞주머니에서 장난감을 못 만든 만큼 동전이나 지폐를 꺼내서 악마에게 줘야 했어. 가엾은 한스. 마을에서 가장 예쁘기로 유명한 "한스 씨의 놀라운 장난감 가게"에서는, 푸르죽죽한 혈색에 코만 빨갛고, 귀는 늘 납작하게 축 처진 고양이가 앞주머니 달린 치마를 매고, 오늘도 내일도 장난감 만드느라 정신없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