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 86

잡짤잡썰 2020. 1. 21. 01:27


다그리면 컷로그로 옮김 뇌내콘티는있는데 그릴시간이없내





마담 E의 요청으로 그린 루카치들





그람시파는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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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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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85

잡짤잡썰 2019. 12. 24. 17:34





코미숀으로 그린 루카치


달고 있는 뺏지는 제9차 소련작가회의 뺏지라고 해요


나정말 그...2~30년대 문학인(작가든 비평가든)들의 그 분위기적분위기...그거엔 되게 관심이 많은데...


정작 그양반들이 관심있는 거(는 문학)에 관심이 없어서 지식이 늘지를 않음


E님이 또 천재학습만화로 떠먹여주셨으면 좋겠다(염치도양심도x)








게르첸과 오가료프와 참새 언덕의 맹세


제 뇌피셜이 아니라...2차자료를 보고 그린 복장인데요...아니 물론 제 뇌피셜도 좀 가미돼 있긴 한데요...


원본 링크는 안함








콜론타이의 물컵들


ㅋㅋㅋ아진짜...등신같지만...재밌었다








당의정세트에 들어간 짤의 원본인데 짤린게 아까워서


이거혹시 백업돼있나? 중복일시 댓글 등으로 슬쩍 알려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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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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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키아벨리의 고독을 말할 수 있겠는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그는 만만치 않은 적수, 찬동자, 세심한 주석자의 거대한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러나 그의 사고가 그에게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휘두르는 "분열시키는 힘"에 착목한다면 그의 고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가 그를 적 혹은 아군으로 대하도록 분열시키고, 심지어 역사적인 환경이 변하고서도 그렇게 분열시키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특정 진영을 그에게 지정하는 일"의 어려움, 그가 누구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설명하는 것의 어려움을 증명한다. 그의 고독이란 우선 이런 의미에서의 고독이다.


현대의 위대한 주석자들은 마키아벨리가 역사 속에서 촉발해 온 격렬한 분열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특징"을, 마키아벨리의 사고 특유의 속성으로서, 그들 자신의 관심분야에 입각해서이기는 하나 어쨌든 깊이 추구된 방식으로 다루어 왔다. (...) 주석자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사고 자체가 남긴 이런저런 미해결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수수께끼가 마키아벨리에게는 있다." 

이 수수께끼는 해독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마키아벨리 문제에는 결코 결착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년의 크로체는 말했다.


이 수수께끼는 다양한 형태를 띈다. 잘 알려진 것에는 "마키아벨리는 군주제론자인가, 공화제론자인가?"가 있다. 보다 정치한 형태를 띄기도 한다. "어째서 그의 사고는 명시明示와 도회韜晦를 동시에 행하곤 하는 것인가?" (...) 어째서 그의 사고는 중단, 탈선, 미해결의 모순을 통해 전진하는가?


제대로 붙잡은 듯 보였던 사고가, 바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사실은 멀어져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완전히 표현되었으면서 아직 다 표현되지 않은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렇게 보는 이를 곤혹케 하는 논점들이 다음과 같은 관념을 뒷받침한다.


즉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그의 사고가 가지는 "의표를 찌르는 성격"에 기인한다. 


이를 증언하는 것은 주석자들뿐만이 아니다. 극히 평범한 보통 독자도 이를 느낀다. <군주론>과 같은 350년 전의 텍스트를 오늘 처음 읽는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기묘한 친밀함(소원한 가까움)"에 사로잡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오래된 텍스트는 마치 우리 시대에 만들어진 것마냥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마치 우리를 위해 쓰여진 텍스트,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무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해 쓰인 텍스트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키아벨리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지점은, 그가 근대정치학의 창설자였다던가 하는 평범한 발견이 아니다. 이를테면 호르크하이머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갈릴레이가 물리학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그가 정치학을 다루고 요소요소의 통합이 나타내는 변동을 하나의 정수적 관계 속에 고정시키며 (...) 실증적 방법에 기초해 정치학을 다룬 사람이라는, 그런 발견이 아니다. 아니다. 우리를 아연케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발견이 아니다. 그런 발견은 우리의 문화에 흡수되고, 과학의 전통 전체에 계승되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 마키아벨리의 사고는 계승되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그 탄생을 본 시대와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고립상태에서, 그의 사고는 "낳는 힘"을 미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고독과 돌출함에 대한 어떤 결정적 지점에 인접해 있다. 그러나 그 지점에 발을 들이기 전에, 그 지점에 다다르기 위하여, 마키아벨리라는 수수께끼가 가진 "고전적 형태"를 일소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제론자인가, 공화제론자인가"?


보통 문제제기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나, 이렇게 문제를 정립하는 것은 기존의 정치체제분류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저런 통치형태의 정상과 병리를 고찰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고전적 정치체제유형론을. 그러나 이 유형론을 마키아벨리는 받아들이지도, 실천하지도 않는다.


특정 정치유형이 같는 본질의 규정은 그의 사색의 과제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 데 상크티스가, 이어서 그람시가 명확히 이해하였듯이, 그의 생전에 절대군주제로서 프랑스나 스페인에 실재했던 국민국가에 대해 이론을 만드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관심을 차지하지 않았다.


국내의 할거와 국외로부터의 침략에 직면한 "통일되지 않은 국가 이탈리아에서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조건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 그것이 마키아벨리의 관심사였다.


이 문제를 마키아벨리는 래디컬한 정치적 언어로 표현한다. "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든, 공화제를 취하고 있든, 그 어떤 기존의 국가에 의해서도 국민국가 이탈리아의 건설이라는 정치적 사명은 성취될 수 없다. 기존의 국가는 모두 낡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국의 새로운 군주만이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새로운 공국의 새로운 군주여야만 한다. 새로운 군주라도 낡은 공국에 있다면 그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낡은 공국은 그를 그 낡음에 사로잡히게 두고 말 테니까.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자신의 뜻에 맞는 군주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런 군주 따윈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는 일반적으로 말한다. 일반적으로, 즉, 이름도 장소도 부여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이 익명성에 담긴 것은 기존의 그 어떤 군주, 기존의 그 어떤 국가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이다. 국가조차 아니었던 소국, 교황이 하사한 쥐톨만한 속령으로부터 자신의 국가를 만들어 가려 했던 체자레 보르지아의 극한례에 따라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라고, 이름없는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다.


군주제론자냐 공화제론자냐? 유명한 마키아벨리문제는 이 양자택일을 넘어서 나아가는 문제이며, 그 전모가 방금 말한 국가의 조건에 의해 자명해진다.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혼자여야만"한다.


어떤 정치에든 없어서는 안될 군대를 창설하기 위해서도, 최초의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도, 국가의 <기초>를 세워 흔들리지 않도록 정초하기 위해서도, "혼자여야만". 이것이 국가의 제1단계다.


(국가의 제2단계, 제1단계의 연약한 국가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하기 위해 그때까지는 "혼자"였던 <군주>가 "복수가 되는 것", 즉 법제를 갖추고 국왕, 민중, 대귀족의 대표자로 이루어진 <합성>정부가 되는 것. 이 단계를 속칭 마키아벨리의 공화제적 단계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알튀세르는 그런 이분법적 관점이 마키아벨리의 사고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부분은 유료 구독자만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키아벨리는 "국민국가구성을 위한 정치적 조건의 이론가"라고. 새로운 군주의 새로운 국가 수립의 이론가, 이 국가의 지속의 이론가, 이 국가의 강화·확대의 이론가라고.


그가 생각하는 것은 기성의 사실이 아니라 이루어져야 할 사실, 그람시가 앞으로 수립될 국민국가의 "마땅히 그래야만 할 모습"이라 부른 그것이다. 심지어 그는 터무니없는 조건 속에서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성과를 낳는데 적합한 정치적 형태가 일절 부재한다는 조건 속에서.


여기서 우리는 다시 마키아벨리의 사고가 갖는 "의표를 찌르는 성격" 앞에 돌아온다. 그가 즐겨 말하는 "국가를 수립하려면 혼자여야만 한다"는 말은, 그 말이 갖는 비판적 성격을 이해한 후에는, 그의 작품 속에서 기묘한 울림을 갖는다. 이 "혼자"라는 건 무엇인가? 어째서 고독해야만 하는가?


이 고독은 분리다. 국민국가의 구성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자유롭게, 제 뜻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혼자여야만 한다. 즉 "근본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자신", "온갖 뿌리로부터 끊어져나온 자신",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정치형태에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그 밖으로 튕겨져 나와 있는 자신"을,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통해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는 <정념론>도 <지성개선론>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새로운 국가의 기초를 짓기 위해 낡은 세계의 조건 밖으로 임의의 개인을 끄집어내 주는 것은 개인의 의식이 아니라 포르투나와 비르투의 결합이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 나라면 <군주론>과 <논고>를 쓰기 위해 마키아벨리 자신이 혼자여야만 했다고 말하고 싶다. 혼자, 즉 낡은 세계에 유통되는 자명한 사실들의 바깥에 끄집어내져 있는 자신, 구세계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이탈한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던 건 그 자신이라고.


마키아벨리는 혼자였다. 왜냐하면 "고립해" 있었으므로. 그의 사고와 싸워온 사람들은 끊임이 없었지만 "그의 사고 속에서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므로". 그런 사람이 없었던 이유에는 그의 사유의 특이한 성질 자체도 있지만, 마키아벨리 이후의 사유들이 놓인 "사유의 틀"도 하나의 이유였다.


누구나 알듯이, 17세기 이후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그들은 하나의 두드러진 정치철학을 만들어냈다. 자연법철학 얘기다.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할 필요도 없이 마키아벨리의 사고마저도, 묻어버렸다.


법이데올로기에 근거하는 준개념, "주체로서의 개인"을 기초로 이 철학은 만들어졌다. 이 철학은 법이데올로기가 인간 주체에게 하사하는 속성(자유, 평등, 소유)으로부터 실정법과 정치국가라는 존재를 이론적으로 연역하려 했다.


자연법철학 최대의 대상이자 쟁점은 절대군주제다. 정당화의 대상이든 이의제기의 대상이든 간에 말이다. 여기에 자연법이론가들과 마키아벨리의 명확한 차이가 있다. 마키아벨리도 프랑스나 스페인에 실재한 절대군주제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다른 대상을 논하기 위한" 논거로 다룬다.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국민국가의 구성을 논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이루어진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루어져야 할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 


자연법이론가들은 절대군주제라는 이루어진 사실 속에서 말한다. 그들이 법적 제문제를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국가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 의심스러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들은 그것을 법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사태가 기정사실화되었을 때 그들은 법적 자격의 관점에서 이를 의심하려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절대군주제와 국가를 둘러싼 전혀 다른 변론을, 마키아벨리의 변론을 묻어버린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연법의 언어를 말하지 않으니까.


이곳에 마키아벨리의 고독의 극점이 있다. 정치사상사 속에서 그가 점한 독특한 위치에. 도덕적 교화를 위해 오래도록 이어진 종교적·이상주의적 정치사상의 전통, 그가 단호히 거부한 전통과, 그에 뒤이은 자연법이라는 정치철학의 새로운 전통,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신흥부르주아지의 자기확인을 이룬 전통과의 틈새에 있는 위치에.


후자의 전통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 전에 전자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다.


자연법의 전통 속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이후로도 연연히 전해져 내려갈 국가의 역사=국가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자연상태가 있었다. 그것은 전쟁상태로 이어졌으며, 전쟁상태는 이윽고 국가와 실정법을 낳는 사회계약으로써 종식된다.


완전히 신화적인 역사=이야기지만 그것은 듣기 좋다. 국가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는 이렇게 말해주니까. 국가의 기원에는 그 어떤 공포도 없었다고. 그곳에는 자연과 법이 있었다고. 국가는 법적인 것에 다름아니며, 법처럼 순수하고, 법처럼 인간의 본성=자연 속에 있었다고...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 제8장에서 소위 "본원적 축적"에 도전한다. 자연법철학자들이 말하는 국가의 역사와 같이, 본원적 축적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옛이야기 수준의 자본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태초에 독립된 노동자가있었다. 그는 근로의욕과 검약정신에 넘쳤기에 축적을 이루고 교환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빈자가 옆을 지나갈 때, 그는 그의 일을 대신 시키는 대신 그를 부양해 주었다.


이 자비로움이 그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고, 그렇게 늘어난 부를 통해 그는 그 밖의 여러 노동을 대가로 받는 대신 많은 빈자들을 구원했다. 이렇게 자본은 축적되었다. 즉 노동, 금욕, 자비에 의해서. 마르크스가 이에 어떻게 답했는지 우리는 안다. 약탈, 도둑질, 강요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토지로부터 쫓겨나고, 농원을 빼앗기고, 부랑자로 전락할 때까지 폭력적인 박탈을 당한 영국 농민의 이야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의 중내 나는 염불과는 전혀 다른, 훨씬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잘한 디테일을 빼고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도 자연법철학자들이 국가의 역사에 대해 늘어놓는 옛이야기와 같은 변론에 어느정도는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 그뿐 아니라, 마키아벨리는 내가 "정치에서의 본원적 축적"이라 부르는 사태의 몇 안 되는 산증인 중 한 명,


국민국가의 시작을 논하는 소수의 이론가들 중 하나라고조차 말할 수 있다.


(...)


그는 계급투쟁의 언어를 쓴다. 권리, 법, 도덕에 대해서 그는 그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즉 종속적 위치에 둘 뿐이다.


마키아벨리의 돌출됨, 그의 변론의 사람을 당혹케 하는 특징으로 돌아와 보자. 어째서 그는 이렇게 사람을 엿먹이는 방식으로 추론을 이끌어가는가? 어째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장에서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하나의 주제가 중간에 뚝 끊어져 이어지는 내용을 찾으려면 더 읽어야만 하게 만드는가?


그렇게 자리를 옮긴 내용이 거기서 딱히 결론을 도모하지도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한 번 끊어진 문제가 다시 다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마키아벨리 문제는 결코 결론이 나지 않을 거라고 크로체는 말했지만, 도리어 이렇게 자문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답을 받아들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그에게 향하는 질문의 유형 쪽이 아닌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쪽은 다름아닌 그 질문의 유형이 요구하고 상정하는 답 쪽이 아닌가?"


근대정치학의 시조 마키아벨리라는 칭호는 진부한 표현이다. 갈릴레이 물리학, 데카르트 해석학과 함께, 근대적 실증성의 최초의 형태 중 하나를 마키아벨리에게서 기쁨에 가득차 발견해 온 주석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들 주석가들은 "새로운 합리성의 전형으로서의 실증과학"을 증명하려 해온 것이다. (...) 그러나 이렇게 억지로 마키아벨리에게 순수한 실증성을 대변시키려 해도, 마키아벨리의 변론에 파인 함정, 주장의 보류, 사유의 수수께끼와 같은 미완료성이 그들의 시도를 실패시킨다.


마키아벨리에게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람시의 직관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군주론>은 정치적 "선언"이라고 그람시는 말했다. 만일 그 이념형을 설명할 수 있다면, 정치적 "선언"은 순수한 이론적 언설이 아니라는 점, 순수한 실증적 논의가 아니라느 점을 고유의 특징으로 한다. "선언"에는 이론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앎에 대한 적극적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면 "선언"은 진공에서 목놓아 외치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정치적 "선언"이 "선언"이고자 한다면, 즉 역사적 효과를 낳고자 한다면, 순수인식과는 완전히 별개의 영역에 적혀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요청은 꽤나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의 점을 유의한다면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외적 정치상황에 대한 <선언>의 "적어넣기"는 "그 적어넣기를 실제로 이루는, 실로 텍스트 안에" 표현되어야만 한다.


<선언>의 텍스트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 그를 둘러싼 상황을 자각적으로 참조하고, 그 상황 속에서 <선언>이 점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하게끔 하고 싶다면 말이다. 바꿔 말하자면, <선언>이 진실로 정치적이기 위해서는, 실재론적-유물론적이기 위해서는, <선언>이 표명하는 이론은 <선언>에 의해 표명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선언>이 개입하는 장, <선언>의 사유의 장, 즉 사회공간 속에 그 <선언> 자체에 의해 위치지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그랬다고 중얼거리는 부분은 유료 구독자만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는 지금 단순하다고조차 할 수 있는 사실──마르크스가 쓴 것 전체에 포함되며, 그람시가 정확히 이해한──을 추상적으로 서술하였을 뿐이다. 마키아벨리의 사유 전체가 국민국가의 구성이라는 역사적 사명의 고찰에 바쳐진 것이라면, 또 <군주론>이 하나의 <선언Manifest>으로 제시된 거라면,


또 경험적으로, 즉 유럽 제국의 대사관을 뛰어다닌 경험, 제국의 군주들에게 간언한 경험, 체자레 보르지아의 인정을 얻은 경험, 토스카나에서 군대를 동원·조직한 경험에 의해 정치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그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실천을 자신의 계산 아래 두고 있었다면",


"그의 사유는 단순히 중성적 공간이 갖는 실증성의 외피를 두르고 나타날 리가 없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적 사유가 독자를 당혹케 하는 것은 그 사유로 인해 분석되는 이론적 요소가 대상과 대상 사이의 정수적 관계를 단순히 진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대신 전혀 별개로 쓰여진 주문主文에 따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 주문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것은 정치적 실천의 변동하는 조건과 그 불가측성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항쟁 속에서 정치적 실천이 점하는 위치, 그리고 이론적 논변을 그것이 논하는 정치적 영역에 써넣으라는 요청이 역시 따라붙는다.


마키아벨리의 일일이 인용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문장이 그가 이 요청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이를테면 <군주론>의 헌사에 있는 다음의 문장이 그 하나다.


"미천한 제가 저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감히 <군주>의 통치에 대해 말하고, 그 통치의 규칙을 제시하려는 것이 저의 오만함"


"때문이라 누가 말한다면 (...) 그것은 저의 뜻한 바가 아닙니다. 풍경을 그리려는 자는 산봉우리와 구릉의 높이를 눈에 담기 위해 낮은 평원에 서야 하며, 낮은 곳을 보기 위해서는 산꼭대기에 서야 합니다."


"민중의 본성에 통효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 필요가, <군주>의 본성에 통효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쓴 것이 결국 <민중론>이 아니라 <군주론>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낮고 미천한 자"임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썼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수법을 <군주론> 및 <논고>의 내용 전체와 관련짓는다면, 다음의 사실은 명확하다. 마키아벨리는 자기 자신을 민중 삼아 <군주>에 대해 논하고, 이탈리아 통일을 이룰 어떤 군주의 실천을 <민중>의 시점에서 진심으로 바라며, 또 그 실천을 사유했던 것이다.


우리는 민중에게 호소함이 곧 투쟁에 호소함과 같음을 마키아벨리의 모든 분석을 통해 알고 있다. 이 투쟁이란 귀족에 대한 민중계급의 투쟁이며, 민중에게 호소함이란 민중의 사랑을 제 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기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도록 <군주>를 부추기는 것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귀족, 즉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키아벨리가 혹독하게 비난하는 그 봉건영주에 대항하는 민중의 단결을 자기 편에 끌어들이는 것이 군주가 해야 할 "민중에의 호소"이다.


그 어떤 것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그람시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군주론>은 일종의 <선언>이라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생생한 변론이라고 말했던 그람시는, <군주론>이 가진 의표를 찌르는 성격을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입장에, 그리고 마키아벨리 자신이 대의로 삼았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마키아벨리 본인이 가졌던 의식에 관련지은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의식"이다. 의식을 가졌다는 것은 이탈리아의 정치투쟁 속에서 자신이 서 있던 입장이 무엇인지를 그가 알았음을 의미한다.


<선언>을 쓰는 행위를 통해 그 입장으로부터 자신의 귀결을 도출해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쓰는 행위"는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을 "이론을 다루는 자 그 자체로서 이론을 다루게 했던 것이다".


인간에게 정치투쟁을 명하는 거대한 사회적 현실에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 동시에 그 투쟁의 종속적 계기, 투쟁의 어느 한 구석에 쓰여질 수밖에 없는 요소로서. 어느 한 구석에.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국가의 기초를 누가 이탈리아의 어느 구석에 이루게 될지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이 이탈리아의 투쟁의 어느 구석에 써넣어지게 될지 역시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은 후위에 있을 것이라고.


그것이 단순한 저술, 그저 "쓰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쓴 글을 요행에, 누군지 영영 알 일 없는 사람과의 만남에 맡긴 것이다.


그의 마지막 고독이 여기에 있다. 자신의 사유가 어느 정도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했다 하더라도, 그 때 그 자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식인"은, "지식인"이 역사를 만드리라 믿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유토피아를 통해,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시작과 관련지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국가의 시작을 노래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역사(=이야기)조차도 완전히 덮어버리진 못할 정도로.


거절과 입장이라는 두 지점에서 그에게 가까운 단 하나의 사유, 마르크스의 사유만이 그를 이 고독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끝)



<원고 가필>


...그리고 그람시의 사유가. 그러나 듣는 이를 당혹케 할지도 모르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마키아벨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그람시는 그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바란다면 여러분이 납득할 때까지 이야기해도 좋고, 필요하다면 "논증"까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말고 다음 기회에. 기회occasion(행운에 의한 조우)가 있다면, 철학사상 유일한 유물론철학─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인 소위 "만남의 철학"을 이뤄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회합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 회합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놀라움"과 "예측불가능한 만남"이고,


오늘 내가 부연하려던 설명과는 "어떤 관련도 없을 것이다"! 

내가 논증하는 것은 (발췌주: 그람시의 이해 대신) 마키아벨리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는 명제다. 그가 철학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말한 적" 없다 해도 말이다.


그는 헤겔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던 스피노자에 필적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철학자라고. 하이데거를 한참 뒤떨어져 보이게 만들고, 프로이트나 데리다가 한 말을 한참 앞서 미리 말해버린 철학자라고...


하지만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여러분의 질문에 대해 대답도 해야겠지요. 나 대신 마키아벨리가 대답해버린 게 아니라면 말이지만, 그건 조만간 알게 되겠죠... ... (fin)



<마키아벨리의 고독> (루이 알튀세르, 1977)의 일본어 번역본에서 한국어로 번역,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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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83

잡짤잡썰 2019. 12. 4. 16:32







엥겔스 199세 생일기념짤



웹부부


당의정세트 배포하면서 구짤들을 전부 역쓰로 보냈지만 얘네는 달리 그린짤도 없고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앗음

(그대로 트레해서 그림체 차이도 심하지 않고...)








자우림 샤이닝은 누가뭐래도 1922년 콜론타이 테마곡으로 적합한 단하나의음악이며어쩌구저쩌구미친꼴보수같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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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의논쟁망가가 언젠가 나올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수정주의논쟁과노동해방단망가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룩셈부르크의 반응을 넣지 못한 게 제일 아쉽네요(개웃기거든요...)

담에 또 수정주의망가를 할일이 있으면 그때 끼워넣을 수 있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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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올렸을 때 제목이 기승전결 중 전까지밖에 없는 만화였는데

정신차려보니 4화구성이 돼서 이제 기승전결 있는 만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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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언덕에서>





새뮤얼 H 바론 저, 시라이시 지로 역 플레하노프 평전에서 한국어로 중역하여 발췌 인용함


올해가 자술리치 100주기인데...NA가 챙기는 걸 까먹어서 망가에 언급이라도 함 해봤습니다


플레하노프 100주기는 챙겨놓고서 말이죠...하여간 정신이 없으면 기념일도 가오도 못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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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





1901






1921





콜론타이 주연인 앤솔 원고에 쓰려고 캐디한 냄저들


위의 셋은 건신론자라고 패션에 통일성을 줬나봄(안그러면까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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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해주신 분이 만들어주신 조지는 오마케라고해요 히죽히죽히죽히죽















위의 짤 바로 밑에 있으니까 되게 중국산 피규어같네


아니 중국산 맑스엥겔스는 따로있긴한데










어쩌다보니 화질이 이런것박에 남지않앗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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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좌시하지 않을 모독적인 커플링으로 세션을 다녀온 죄과를 912084019109809만년전에 그린 공식커플짤로 상계할셈







레닌과 크룹스카야






레닌과 이네사(크룹스카야: 야 공식컾이라매)







콜론타이와 그의 키링...그...이름이...아맞다 디벤코






부하린과 안나 라리나





클라라와 오시프 체트킨





역시 구짤은 그려놓고 묵혀야 돼 이럴 때 써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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