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빼앗기는 것"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




 

카를 씨는 이야기를 마치자 조용히 카를과 에데 쪽을 쳐다보았어요. 질문을 재촉하는 눈빛이었지요. 카를 씨의 말없는 채근에 에데는 뭐라도 질문을 해야겠다 싶어서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에데가 말문을 열기 전에 카를이 선수를 쳤지요.

"저...그래서 한스 씨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카를 씨는 눈을 깜빡였어요. 카를의 질문이 뜻밖이었던 모양이에요.

"그게...궁금한가?"

카를 씨의 반문에 카를은 질문이 이상했나 싶어서 슬쩍 에데와 로자 쪽을 돌아봤어요. 솔직히 학문적인 질문은 아니라는 건 카를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래서 오래도록 이러저러하게 살았답니다"는 식으로 끝나는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건 인지상정이잖아요. 안 그래도 카를 씨에 대해 가졌던 무서운 인상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던 터라, 카를은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했어요.

"악마가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영혼을 빼앗겼나요?"

푸흡, 하고 웃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어요. 로자였지요.

"미, 미안. 너무 예상 외의 질문이라 그만..."

"로자, 학생의 질문을 비웃어선 안 돼."

카를 씨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헛기침을 하는 로자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어요. 감싸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굳이 내 질문이 비웃음거리라는 걸 못박아주지는 않으셔도 되는데, 라고 카를은 생각했어요.

"특히 그 학생이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라면 말이야."

"비웃은 거 아니에요, 카를! 그냥 천진난만한 질문이라 웃음이 나온 거라구요."

진짜 아닌 거 알지? 로자는 미안함의 표시로 카를의 팔을 톡톡 두드렸지만, 표정은 그닥 미안해 보이지 않았어요. 카를 씨도 로자한테 충고하긴 했지만, 웃음을 띄우고 있는 걸로 봐서 내심으로는 로자에게 동조하는 것 같았어요.

"흠, 덩치에 안 어울리게 순진한 소년이 자네 안엔 들어있는 모양이야. 어쨌건 첫 번째 질문을 던진 용기는 평가하겠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답은 '그렇다' 야."

"뭐라고요?"

로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를 씨에게 시선을 보냈어요. 꼭 '나한테는 그런 얘기 하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동시에 '아니다'이기도 하지."

카를 씨는 당혹해하는 로자의 시선을 받아치며 말했어요.

"로자, 너는 그동안 수업을 잘 들어왔으니까 한스 씨가 영혼을 빼앗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러면 이번에는 한스 씨가 영혼을 빼앗겼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렴."

로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곧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어요. 

"잠깐, 로자. 후배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봐야지. 카를, 왜 한스가 영혼을 빼앗겼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냥 로자가 대답하게 두었으면 좋았을텐데. 카를은 난처해졌어요. 왜라니, 달리 이유가 있나요. 옛날 이야기에서 악마랑 계약을 하는 인물들은 보통 영혼을 뺏겨서 영원히 지옥에서 괴로워하거나 기지를 발휘해 영혼을 지켜내고 악마를 퇴치하거나 둘 중 하나로 끝나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인걸요.

"어...그냥 예시를 들었을 뿐이에요. 흔한 결말이잖아요."

카를 씨의 마뜩찮아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카를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번에도 상식에 갇힌 대답을 해버렸지 뭐예요. 카를 씨는 차분하지만 묘하게 성마른 어조로 카를에게 말했어요.

"내 이야기에 나오는 악마는 분명 영혼은 필요없다고 말했었지. 악마는 함정을 팔지언정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 반드시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라네. 옛이야기에 나오는 악마들은 어떤 형태로든 제 입으로 계약자의 영혼을 가져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영혼을 가져갈 수 있는 걸세. 악마가 한스의 영혼이 필요없다고 한 이상 한스가 영혼을 빼앗기는 결말은 있을 수 없네."

"저, 그러면 카를 씨." 카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카를 씨의 말을 끊었어요. 

"그럼 아까 한스가 영혼을 빼앗겼다고 말씀하신 건 왜...?"

"내가 자네한테 물어본 게 그것 아닌가? 나한테 되물어봐서 어쩌려고?"

카를 씨의 일갈에 카를이 어쩔 줄 몰라하자, 에데가 급하게 끼어들었어요. 

"비유적인 표현 아니었을까요? 카를 씨가 한스의 영혼이 빼앗겼다고 한 건 말이에요."

찡그린 표정으로 카를을 보고 있던 카를 씨가 에데 쪽으로 눈길을 돌렸어요. 에데는 최대한 태연한 태도로 보이도록 꼿꼿하게 카를 씨를 마주봤어요.

"악마가 실제로 한스의 영혼을 가져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카를 씨 말씀대로 한스의 영혼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미리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한스에게는 그 대신에 영혼을 빼앗기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이 생긴 거예요. 카를 씨는 그걸 '영혼을 빼앗겼다'고 표현한 거죠."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나?"

"그건..."

에데는 원래 하려고 했던 질문을 떠올렸어요. '한스 씨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질문이었지요. 

"한스 씨는 계속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구해주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요."

어제 로자와 우유 배달부 소년에 대해 했던 이야기, 일꾼들의 삶에 대한 프레드 씨의 책, 모든 것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에데는 <한스 씨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카를 씨가 듣고 싶은 이야기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알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한스 씨가 죽은 게 '영혼을 빼앗긴 일'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가 되니까요. 죽음은 아니면서, 영혼을 빼앗기는 것처럼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한스 씨가 힘들여 만든 장난감들을 악마에게 계속 빼앗긴 걸 말씀하신 건가요?" 

에데는 말을 마치고 카를 씨의 대답을 기다렸어요. 카를 씨의 표정은 무덤덤했어요. 여전히 찌푸리고 있는 눈썹을 보면, 에데가 나름 자신있게 했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요? 카를 씨는 흠, 하고 작게 콧소리를 냈어요.

"반은 맞췄군. 좋아하지는 마, 내 얘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 정도도 추론하지 못하는 멍청이를 이 집에 둘 수는 없으니까."

카를은 가라앉은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어요. 카를 씨의 진심이 어떨지는 몰라도, 방금 카를 씨의 말대로라면 카를은 이 집에서 쫓겨나야만 해요. 

'로자는 이 수업이 생각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쉬운 책을 읽는 수업이라고 했는데, 첫 단계에서 벌써 이렇게 헤매는 걸 보면 난 카를 씨가 가르치려는 과목이 적성에 안 맞는 걸지도 몰라.' 

카를의 걱정스러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를 씨는 무심하게 대답을 재촉했어요.

"카를, 에두아르트의 대답을 보충할 수 있겠나?"

"...아니오, 잘 모르겠어요."

카를은 에데가 대답할 때까지 카를 씨의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에데도 찾지 못한 답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요? 카를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카를 씨는 들릴락 말락하게 혀를 차고는 로자에게 차례를 넘겼어요. 로자는 카를에게 살짝 동정적인 눈빛을 보내고는 또박또박 대답했어요.

"카를이 한스 씨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해서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우린 영혼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한 적 없었고, 할 예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비유적인 표현이라면 납득이 가요."

로자는 거기서 말을 끊고 카를과 에데 쪽으로 몸을 틀었어요.

"카를, 에데. 한스 씨가 악마를 위해 일하느라 영혼을 빼앗겼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에데가 설명한 것처럼 열심히 만든 장난감들을 빼앗겨 버린 것. 우리는 흔히 열심히 만든 물건에는 영혼이 담겨 있다고들 하지? 한스 씨가 만든 장난감에는 한스 씨의 영혼처럼 소중한 게 담겨 있는데, 그런 소중한 장난감들을 더 이상 마음대로 팔거나 가질 수 없게 되어버렸어. 그 장난감들은 악마가 가져가 버렸지. 그게 첫 번째 의미야."

"한스 씨의 장난감에 담겨 있는 소중한 게 뭐야? 진짜 영혼은 맥락상 아닌 것 같은데."

"한스 씨의 일 그 자체야."

로자의 대답에 질문한 에데도, 가만히 듣고 있던 카를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어요. 한스 씨의 일이 담겨 있다는게 무슨 말일까요? 

"일이 담겨 있다는게...무슨 뜻이야? 이것도 비유적인 표현이니?"

"아니, 이건 말 그대로의 의미야. 한스 씨가 일을 함으로써 장난감이 만들어졌어. 한스 씨의 노력과 시간이 없었으면 장난감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지. 장난감에 일이 담겨있다는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니? 그러면 장난감이 한스 씨의 일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돼. 장난감, 예를 들어 놋쇠 병정이라고 치면, 병정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놋쇠, 그리고 놋쇠를 다듬기 위한 한스 씨의 공구를 제외하고는 놋쇠 병정은 한스 씨의 일로 이루어져 있는 거야. 엄밀히 말하자면 한스 씨가 만들지 않은 놋쇠와 공구도 원래는 다른 일꾼들의 일 그 자체였지만 말이야."

로자가 기껏 차근차근 설명해 줬는데도 두 사람은 더욱 헷갈리기만 했어요. 차라리 장난감에 영혼이 담겨있다는 말이 이해가 갔으면 갔지, 장난감을 만들기 위한 사람의 "일"이 그대로 장난감이 된다는 게 어떻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표현이 될 수 있을까요? 카를 씨의 질문도 알쏭달쏭했지만 로자의 설명은 더욱 수수께끼 같았어요. 에데는 혹시 이해했을까? 카를은 슬쩍 에데 쪽을 보았지만, 에데도 혼란스러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카를 씨에게 물어봤어요.

"한스 씨의 일도 영혼처럼 추상적인 개념 같은데, 어떻게 영혼과 달리 장난감에 '진짜로' 담길 수 있는 건가요? 그리고 만약 담겨있다손 쳐도, 그 일이 영혼만큼 중요한 것인가요?"

카를 씨가 빙긋 웃었어요.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대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을 했군, 카를. 오늘 자네가 한 말들 중에서 가장 괜찮았어. 영혼의 문제는 좀 나중에 설명할 예정이었으니, 자네 질문에 대해서는 로자의 설명이 끝난 다음에 대답하도록 하지."

카를 씨의 말에 로자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 카를 씨는 너희가 어떤 점을 어려워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영혼을 빼앗겼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에 대해 듣고 나면 좀더 이해가 쉬워질 거야. 첫 번째 의미는 한스 씨가 일해서 만든 장난감, 즉 일 자체를 빼앗겼다는 뜻이라고 했지? 두 번째 의미는 좀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간단히 말하면 더 이상 일을 즐길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뜻이야."

에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로자 말대로 두 번째 의미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지요. 어째서 그것이 "영혼을 빼앗긴다"는 표현으로 비유될 수 있는지는 아리까리했지만요.

"한스 씨가 지옥에 장난감들을 납품하느라 장난감 만드는 일이 고통스러워지고,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결과물인 장난감을 빼앗겨 버렸다...그것이 '영혼을 빼앗기는 것'의 의미. 어째서 그런 비유가 가능한가요? 카를도 똑같이 질문했지만, 일이 영혼만큼 중요하다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럼 반대로, 영혼이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야?"

로자의 질문에 에데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어요. 영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아주 중요하다는 느낌이 드는걸요. 영혼의 양식, 영혼의 동반자, 영혼의 아름다움...무엇이든 영혼과 관련되면 더 고귀하고 중요하게 여겨지고, 반대로 일과 관련되어 있는 말들이 주는 인상은 일상적이고 시시하지요. 

"음...일을 안 하고도 잘 사는 사람들은 많지만,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살아있을 수 없잖아?"

카를이 에데 대신 대답했어요. 로자는 씩 웃었어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믿어왔지. 사람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모르던 시절, 보이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어. 몸이라는 그릇 안에 담긴 영혼이 생각하고, 느끼고, 몸을 조종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몸은 그릇일 뿐이고, 영혼이 사람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영혼이라는 낱말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본질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어. 그래서 옛이야기의 악마들은 호시탐탐 인간의 영혼을 노리고, 카를도 아주 소중한 것을 뺏긴 한스 씨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는 비유를 쓸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영혼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빼앗길 수도 없고, 소중하지도 않지."

카를 씨가 로자의 말을 받아 이었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영혼이 아니라 노동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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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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