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여기서 하란 얘긴 없었잖아?"
<첫 번째 숙제>
이 탄광에서는 4세, 5세, 7세의 아이들도 일하고 있지만, 대체로 8세 이상이다. 그들은 채굴된 광석을 막장으로부터 마차 도로나 수직갱까지 옮기기 위해, 혹은 광산의 각 부분을 구획짓는 환기문을 일꾼들과 광석들을 들여보내기 위해 열거나 닫기 위해 고용되고 있다. 광산·탄광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은 일주일 간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교회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공부를 하고픈 마음은 있으면서도 지독하게 졸려하는 까닭에 반응이 둔하다고 교사들은 한탄한다.
(...)
탄광의 일꾼들은 일하면서 늘 무리한 자세를 강제당하고 있기 때문에 체질이 허약해지고, 다리가 굽으며, 무릎이 안쪽으로, 발이 바깥쪽으로 굽고 척추도 구부러지기에 백 사람 중 한 명 탄광의 광부가 섞여 있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의사마저 그렇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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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때부터 매일 12시간 혹은 그 이상, 바늘 머리를 만들거나 톱니바퀴와 줄로 광을 내거나, 그 밖에 각종 서쪽 나라의 일꾼다운 상황 하에서 생활해온 사람이, 30대가 되었을 때 얼마나 인간적인 감정과 능력을 지켜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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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타인을 먹이로 삼고, 그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소수의 강자, 즉 물주들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며, 다수의 약자 즉 가난한 이들에게는 근근한 생활수단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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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당신들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자칭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들이 당신들의 괴로움에 조금이라도 진지한 주의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
강제노동은 가장 가혹하고 무엇보다도 굴욕적인 고통이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만큼 소름돋는 일은 없다.
책은 두껍진 않았지만 아주 얇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고발적인 문체와 자극적인 내용은 읽기에 편해서, 로자가 읽을 부분을 골라 주지 않았더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요. 읽고 나서 에데는 눈썹을 찡그렸어요.
"끔찍하네. 진짜로 이렇게까지 사람을 부려먹는단 말야?"
"그것도 그렇지만, 뭔가 프레드 씨가 쓴 것 같지가 않아."
"프레드라고 해도 된다고 한 적 없어! ...하지만 프레드가 쓴 것 같지 않다는 데엔 동의해."
"그치그치! 프레드 씨는 온화한 사람 같던데, 이 책의 글쓴이는 당장이라도 돈 많은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 것 같단 말이야."
로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를이 다소 호들갑스럽게 반응했어요.
"프레드 씨,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잖아. 그런데 이 책은 아주 낡아 보이는걸! 이게 정말 프레드 씨가 쓴 책일까? 어쩌면 대필작가가 쓴 걸지도..."
"카를, 소설 그만 쓰고 공부로 돌아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그리고 프레드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댔어."
"몇 살이신데?"
"에데, 너까지! 나도 정확히는 몰라. 프레드는 절대 자기 나일 얘기해 주지 않는걸. 프레드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도 카를이 얘기해 준 거야."
"후원자 카를 씨 말이지?"
"그래, 아니면 누구겠어. 자 이제 진짜로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카를을 실망시켜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카를, 에데. 이 책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로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카를은 슬쩍 시선을 피하다가 도움을 청하듯이 에데 쪽을 보았어요. 에데가 저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카를은 다시 로자를 보며 머뭇머뭇 입을 열었어요.
"글쎄, 무슨 생각이라기보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면 이상하겠지?"
"세 살짜리 어린애라도 그건 알겠다. 좀더 구체적인 감상은 없어?"
로자는 핀잔을 주며 에데 쪽으로 눈치를 주었어요. 하지만 에데라고 해서 특별히 뾰족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프리드리히 씨는 공장이나 회사를 갖고 있는 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하고 싶은 것 같던데. 그런데 어디까지 진짜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내 예전 고객들 중엔 부자들도 많았지만, 그 사람들이 특별히 가난한 고객들보다 나쁘게 느껴지진 않던걸."
"오히려 신사적이면 신사적이었지...그리고 일꾼들이 힘들게 일하는 건 그 사람들이 가난하니까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애초에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심히 일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프레드 씨는 시종일관 부자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재산을 훔쳐간다고 하니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
에데의 말에 힘을 얻은 듯 카를도 의문을 제기했어요. 두 사람의 반응에, 로자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어요.
"흐흥, 밝혀지고 난 후엔 당연해 보이는 진실도 처음에는 상식의 껍질 밑에 숨어있는 법이지. 껍질을 벗겨내고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게 어렵기 때문에 카를이 대단한 사람인 거야. 그러면 에데, 카를,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자습시간을 줄게. 그동안 간단한 숙제를 내줄거야."
숙제라니! 중학교에 다닐 때나 해봤지 이후엔 구경한 적도 없는데. 카를이 우는 소리를 해도 아랑곳 않고 로자는 칠판에 백묵으로 글씨를 써내려갔어요. 에데는 곧 그게 카를과 자신이 방금 전에 말한, <서쪽 나라 일꾼들의 실태>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두 사람의 말을 옮긴 후, 로자는 맨 위에다 좀더 큰 글씨로 이렇게 썼어요. '어디가 틀렸을까?'
"좀더 차근차근 프레드의 책을 읽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거야. 그럼 1시간 후에 봐!"
로자는 금세 서재 문을 열고 나가버렸어요.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펴던 카를은, 에데가 로자 뒤를 따라 나가려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숙제 안 해, 에데?"
카를의 말에 에데는 이쪽을 돌아보면서 한 손에 낀 프리드리히의 책을 들어보였어요.
"꼭 여기서 하란 얘긴 없었잖아?"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카를은 끙 소리를 내며 책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