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8

본편로그(앞부분) 2015. 3. 21. 02:39

~짤 준비중~



"청춘의 꽃도 같이 썩어죽게 생겼다고."

<야외 수업>




 

"동화책 아냐 이거?"

책을 들고 앞뒤로 살피며 카를이 말했어요. 설마 내가 너무 수준 낮은 말만 해서 교재 수준을 낮춘 건가 싶어 불안해졌지요. 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어요.

"맞아, 동화책이야. 이거는 지금 읽으라는 건 아니고, 두 번째 숙제. 내일 오전수업까지 읽어오면 돼."

"아까 그 책은 이걸로 끝이야? 좀더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데."

"제자리에 갖다 놓기만 한다면 마음대로 가져가서 봐도 돼! 그러라고 있는 서재인걸."

로자가 허락하자 에데는 책꽂이로 걸어가 로자가 꽂아놓은 <서쪽 나라 일꾼들의 실태>를 다시 꺼냈어요. 카를은 자기도 그렇게 할 걸 그랬나 싶었지만, 괜히 의식하고 따라하는 걸로 보이긴 싫었기 때문에 일부러 신경쓰지 않는 척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를 훑어보았지요. 아무래도 동화책이다 보니 중간중간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날카롭고 정돈 안 된 펜선으로 그려진 걸어다니는 고양이는 색조합도 심란하게 칠해져 있어서 어린이용 책 치고는 실험성이 다소 과했지요. 카를도 취미로 그림을 좀 그려본 터라, 얼마나 화가에게 줄 그림값을 후려쳤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어요.

"왜 그래 카를? 생각보다 어려워 보여?"

에데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내리면서 물어봤어요. 카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책 내용을 조금 훑어보다가, 지금은 그러면 뭘 해야 하나 싶어 로자에게 물어봤어요.

"이 책은 숙제랬잖아, 나중에 읽으면 되는 거랬지? 그럼 지금은 뭘 하면 되는 거야?"

"으흠, 안 그래도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참이었어. 점심 먹기엔 좀 이른데."

"공부하고 남은 시간엔 쉬면 되는 거 아냐? 로자 넌 평소엔 뭐 하고 놀아?"

"나? 그냥 다른 여자애들이랑 비슷하지 뭐. 책도 읽고, 편지도 쓰고, 가끔은 나가서 꽃이나 새도 보고."

카를이 웃으면서 진짜 평범한 아가씨들은 논다는 말을 그런 뜻으로 쓰지 않는다고 하려던 찰나, 에데가 카를에게 프레드 씨의 책을 내던졌어요.

"그래 그거야! 꽃이나 새 보는거 좋지. 집 밖으로 나가자!"

카를은 얼떨결에 두 손으로 책을 받느라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를 떨어뜨릴 뻔했어요.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에데의 제안은 카를 입맛에 꼭 맞았지요.

"밖으로? 아직 수업시간인데...뭐 좋아, 밥 먹고 공부만 하며 지낼 순 없지."

카를이 맞장구 치자 에데가 미소지으며 주먹을 내밀었어요.

"이래야 내 친구답지." 카를이 에데와 주먹을 마주치자 로자는 팔짱을 꼈어요.

"손발 착착 맞는거 봐! 이봐 에데, 좀전엔 프레드 책이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느니 했으면서, 그건 그냥 제스쳐였던 거야?"

"나가서 읽으면 되지. 솔직히 이 서재, 학문이 꽃피기엔 너무 어두침침하잖아?"

"청춘의 꽃도 같이 썩어 죽게 생겼다고. 에데 말대로 하자! 로자, 집 근처에 어디 소풍갈 만한 데 없어?"

"집에 처음 올 때 숲 우거진거 못 봤니? 소풍은 무슨."

로자는 고개를 모로 저으면서도 의자를 집어넣고 일어섰어요. 그리고 카를의 손에서 <서쪽 나라 일꾼들의 실태>를 뺏어 에데에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지요.

"야외수업은 허락해 줄게. 하지만 이건 소풍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업인거, 명심해!"

"너무해, 아까는 쉬는 시간이랬잖아!"

로자는 단호한 손길로 에데에게 동화책을 내밀었어요.

"프레드에게 너희를 가르칠 막중한 책임을 위임받은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 수업 첫날부터 농땡이 피웠다는 평가를 받고 싶진 않다고. 이제부터는 점심 겸 예습시간이야! 간단히 먹을 것 좀 챙겨가서 같이 이 책을 읽는거야."

에데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받아들었어요. 말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수업이라니 너무하다고 했지만, 밖에서 식사하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지요. 카를은 벌써 동화책을 챙겨들고 서재 문을 열고 있었어요.

"나랑 에데는 이대로 바로 나가면 돼! 로자, 옷 갈아입고 올 거지? 우리가 부엌에 가서 뭐라도 가져올까?"

"아니, 나도 이 차림 그대로 나갈거야. 내가 집 주변에 소풍갈 만한 곳은 없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찾아낸 곳이 있는데, 맨 꼭대기 다락방으로 가면 지붕으로 바로 나 있는 큰 창문이 있어. 거길 통해서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데, 거기서 수업할 거야."

"지, 지붕?"

"걱정 마,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씨름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굴러떨어질 일은 없을거야."

 로자는 자기 몫의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를 카를 손에 맡기면서 복도로 나갔어요.

"난 부엌에 가서 렌헨한테 도시락을 부탁할 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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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굉장한데!"

카를은 로자가 일러준 대로 다락방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가자마자 탄성을 질렀어요. 집안에 있을 때는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주변 경치가 시원하게 트여 보였거든요! 호수처럼 넓게 자리잡은 숲은 느긋하게 경사를 이루며 내려갔고, 그 끝에는 카를과 에데가 떠나온 도시의 지붕들이 펼쳐져 있었지요. 눈을 가늘게 뜨면 좀 더 멀리 공업지대의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에데가 다락방에서 가져온 담요를 건네받아 먼지를 털면서, 카를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어요. 

"서재에 책먼지가 은근히 많았나봐, 바깥 공기가 아주 상쾌해!"

"숲속이라 그럴거야, 아마. 기껏해야 몇 마일 안 되는 거리일텐데 도시랑 비교도 안 되게 공기가 깨끗한걸."

에데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자, 담요를 지붕에 전부 깐 카를이 뻗은 손을 잡고 끌어올려 주었어요. 곧 로자가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지요. 로자에게 바구니를 건네받은 카를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어요.

"너 실수한 거야, 로자! 순순히 식량부터 넘겨주다니, 우리가 도시락 욕심에 널 버리고 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렌헨이랑 같이 다락방 창문을 못박아 버릴거야."

로자도 피식 웃으며 받아쳤어요. 카를과 에데가 뻗어주는 손을 한 짝씩 잡고 올라온 로자는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며두 사람 사이에 자리잡았지요. 로자가 도시락 바구니를 끌어당겨 흰 보자기를 벗기자, 두 청년은 양옆에서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어요.

"세상에 로자, 이거 전부 렌헨이 만든거야?"

"응, 맞아. 렌헨은 정말이지 우리 집의 집정관이야! 렌헨 없인 카를도 프레드도 아무것도 못할걸."

두꺼운 종이에 통째로 싼 넓적다리 햄과 치즈 덩어리들, 적포도주 병, 아마도 버터가 들어있을 도자기 그릇, 작고 예쁜 휴대용 병에 담긴 나무딸기 잼에다 황금색 껍질이 먹음직스러운 파이까지─카를은 사과파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셋이 먹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많았지요. 제일 놀라운 건 이제 막 구운 듯 따뜻함이 남아있는 빵이었어요. 빵은 빵가게에서 사먹는 건줄로만 알았는데! 에데는 동그라니 먹음직스러운 빵을 집으려다 혹시나 싶어서 재킷 자락에다 손을 문질러 닦았어요. 로자는 어느새 익숙한 손길로 코르크 마개를 따고 있었지요. 

"잔 챙겨오는 걸 깜빡했네. 렌헨이 보면 화내겠지만, 그냥 입 대고 마셔."

"이야아, 이거 대담한 아가씨네? 설마 카를 씨나 프레드 씨의 수집품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이건 내 용돈을 쪼개서 산 거거든? 나도 와인은 하루 한 잔씩만 마시는데 특별히 너흴 위해서 가져온 거야! 고맙게 여기진 못할 망정!"

로자는 깔깔 웃으며 코르크 따개로 카를의 옆구리를 쿡 찔렀어요. 으윽, 로자리우스 너마저...카를은 거품 무는 흉내를 내며 에데가 정성스레 잘라 놓은 치즈 한 조각을 쏙 집어먹었어요.

"야, 카를! 로자리우스, 저 도둑놈을 해치워 버려!"

"우물우물....너희들의 알량한 버터칼로는 이 카를 님의 겉옷 한 장 잘라낼 수 없도다....아, 이거 사과파이네"

시끄럽게 떠들고 까불며 놀다 보니 어느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어요. 산처럼 많아보이던 도시락도 어느새 햄 덩어리를 빼곤 거의 다 먹어치워 버렸지요. 따뜻한 오후 햇살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서, 카를은 그만 지붕 위에 드러눕고 말았어요.

"졸리다..."

"카를, 자면 안돼! 한스 씨 이야기 읽기로 했었잖아!"

"한스 씨도 이렇게 볕 잘 드는 지붕에 올라오면 낮잠이 자고 싶을거야..."

"한스 씨는 고양이니까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넌 사람이잖아! 에데, 카를 좀 일으켜 세워봐!"

"카를~ 얼른 일어나! 일어나서 공부하자! 이번엔 나한테 이겨봐야지!"

에데는 햇빛 때문인지 아니면 와인 때문인지 발그레해진 카를 뺨을 손바닥으로 챡챡 쳤어요. 카를은 진짜로 잠든 건지 잠든 척 두 사람을 놀리는 건지, 냠냠 입맛만 다시고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지요. 카를의 능청스러운 얼굴에 에데의 눈빛에도 장난기가 돌았어요.

"좋아, 잠든 척이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구!"

에데는 살그머니 상체를 숙여 카를의 스웨터를 끌어올렸어요. 카를의 배 위로 드러난 연회색 셔츠에 에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생각이 미치자, 로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에데를 말리려 했어요. 

"에데 잠깐만, 여긴 지붕 위니까..."

"으핫, 아하하하하학!!"

"후회하기엔 늦었어, 어디 맛 좀 봐라!"

로자가 말릴 새도 없이 에데는 카를의 배를 무자비하게 간지럼 태웠어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카를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긴 팔다리를 휘저었지요. 에데는 카를의 발차기를 피하려다 그만 중심을 잃고 기우뚱 흔들렸어요.

"어, 어어어!"

"에데!"

카를이 다급하게 팔을 뻗었지만 에데의 몸이 굴러떨어지는게 빨랐어요.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비명소리와 함께 자기 눈을 가리는 로자의 하얀 손이 눈꺼풀 뒤로 사라지자마자 에데는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걸 느꼈어요. 귓속이 물이 들어찬 것처럼 멍해지고,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는 천천히 눈을 떴어요. 

"헉, 후우, 하아..."

멍해진 귀에 소리가 다시 돌아오자마자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듯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어요. 다리가 의지할 데 없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걸 인식하자, 본능적으로 비어있는 손이 쇠창살을 움켜쥐었어요.

"허억, 뭐, 해, 멍청아...! 얼른 딛고, 올라서지, 않고....!"

에데는 허겁지겁 다리를 발코니 바닥으로 끌어올렸어요.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발코니 창살에 가슴을 걸치는 데 성공하자, 손을 잡아준 사람이 에데의 멜빵을 잡고 상체를 창살 안으로 잡아당겼어요. 간신히 발코니로 올라온 에데가 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자, 그 사람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어요. 에데는 아직도 그 사람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땀범벅이 된 손을 화들짝 놓았어요.

"가, 감사합니다..."

에데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그 사람은 숨만 쉬기에도 벅찬지 센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지붕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카를만이 어쩔 줄 몰라하며 중얼거렸지요.

"카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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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7

본편로그(앞부분) 2015. 3. 3. 15:16

~짤 준비중~



"부자라는 말은 그만 쓰도록 하자."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




 

"좋아, 카를. 프레드의 책을 읽으면서 근사한 대답이 떠올랐는데, 문을 열자 집주인 카를과 마주치는 바람에 깨끗이 잊어버렸다 이거지."

"바로 그거야."

"변명을 하려면 좀 더 창의적으로 해 봐!"

로자의 허탈하다는 듯한 말투에 카를은 어깨를 으쓱했어요. 변명이 아니라 사실인걸요. 한참을 잊고 있었던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오는 위압적인 외모의 집주인보다 더 집중을 방해하는 존재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나도 노력은 했어. 평소에 스스로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식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까진 생각해 봤지. 어, 음, 그리고,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다는 생각도 들었달까..."

사실 마지막 문장은 적당히 주워섬긴 거였어요. 보통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교회이기 마련인데, 프레드 씨의 책에는 교회 얘기가 없었기 때문이죠. 뜻밖에도 로자는 카를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표정을 폈어요.

"제법인데, 카를! 아주 게으름 피우던 건 아니었나봐? 맞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교회의 사제들 말에 충실하게 살면 신이 그들을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하거든.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약 같은 거야. 실제로는 신은 허상일 뿐이고 사제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동맹군 중 한 사단일 뿐인데 말이야."

자기가 하려던 말은 그냥 교회에서 주는 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는데, 어쨌든 로자가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카를은 생각했어요. 로자의 말도 과격하고 처음 들어보는 소리이긴 하지만 아예 있을 수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지요. 카를과 다른 개구장이 아이들을 귀여워해 주시던 동네 목사님의 상냥한 얼굴이 떠올라서 좀 죄송스럽긴 했지만요.

"그래, 인간은 신이 만든 게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거니까.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신의 힘을 믿고 기대기엔 과학이 너무나 발달해 버렸어."

카를은 그럴듯하게 덧붙였지만 사실 로자의 말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제들이 "동맹"이라는 건 무슨 말일까요? 몇몇 부패한 사제들(특히 옛날식 사제들 말이죠!)을 제외하고, 선량하고 검소한 보통 사제들이 대체 누구와 손을 잡고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헤매게 만든다는 건지 카를은 짐작도 할 수 없었어요. 교회가 사람의 의식주를 도와주지 못할 수는 있어요. 땅 위에는 천국도, 신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착하고 바르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 아니겠어요? 애초에 교회의 본래 목적은 사람들의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걸 돕는 건데 말이에요.

카를이 두 사람 모르게 교회와 사제들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로자는 에두아르트에게도 질문을 던졌어요.

"에데도 말해봐. 책을 읽으면서 뭔가 새로운 걸 발견했어? 너랑 카를의 말 중에서 틀린 곳이 있었니?"

에데는 로자가 가리키는 칠판의 글씨들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어요.

"내가 부자들이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보다 나쁜 게 아니라고 한 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해. 세상엔 로빈 이야기에 나오는 나쁜 영주같은 부자는 많지 않아. 대부분은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고 일꾼들에게 급료를 주는 평범한 이웃들이지. 

하지만 프리드리히 씨의 말도 틀리지 않아. 공장이나 회사를 가진 부자들은 나쁜 의도가 있든 없든, 결과적으로는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데?"

"...열심히 일하는 건 일꾼들인데, 돈을 버는 건 부자들이니까?"

에데는 자기가 말해 놓고도 좀 유치한 말인 것 같아 살짝 머쓱해졌어요. 물론 열심히 일한 건 일꾼들이지만, 밑천을 들여 일거리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건 공장이나 회사의 주인들인걸요. 은행에서 일하면서 많이 봤지만, 워낙 큰돈이 밑천으로 들어가다 보니 사장 노릇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두 사람이 가만히 있자 에데는 자기가 한 말을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 방금 건 좀 이상했어. 밑천이 크면 돈을 많이 버는 건 당연한 일이지."

"이상하지 않았어, 에데. 조금 전에 한 말이 맞아. 카를도 같이 생각해 봐. 밑천을 댄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게 옳을까? 아니면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게 옳을까?"

"그야 돈낸 만큼 벌고 일한 만큼 버는 게 맞는 거 아냐?"

"보통은 네 말대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카를. 그럼 얼마만큼이 '돈낸 만큼'이고 '일한 만큼'인지는 누가 정하는 걸까?"

"글쎄, 부자들이겠지." 카를이 대답했어요.

"적어도 일꾼들이 정할 것 같지는 않은데." 월급날 받던 빠듯한 액수를 떠올리며 에데도 거들었어요.

"좋아, 좋아. 많이 발전했어. 이쯤에서 우리 부자라는 말은 그만 쓰도록 하자."

로자의 다소 갑작스런 제안에, 카를은 무슨 말이냐는 뜻으로 양손을 들어보였어요. 에데도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로자는 듣기 좋게 또박또박 설명해 줬어요.

"너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익숙한 표현을 썼는데, 슬슬 정확히 해둬야지. 공장이나 회사를 갖지 않고도 부자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작은 공장이나 회사를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부자가 아니기도 하고. 게다가 부자와 빈자라는 표현은 그 둘을 가르는 기준도 너무 애매해. 지금부터는 자기 밑천을 들여 공장이나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물주'라고 하는거야."  

"물주...말이지." 카를은 공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단어를 되풀이했어요. "좋아, 외웠어."

"슬슬 주제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얘기하던 데로 돌아가 보면 안될까? 부자, 아니 물주들이 나쁜지 아닌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에데가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보다 물주들이 돈을 많이 버는 건 나쁜 일이라고 얘기했어. 그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착한 사람들이고,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야. 그럼 이제, 왜 그게 나쁜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야. 에데, 네가 말을 꺼냈으니 왜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해줄래?"

"그건..."

에데는 다시 말문이 막혔어요. 사실 그다지 학문적이지는 않은, 단순한 느낌에 따라 말한 것일 뿐이거든요. 로자와 카를과 이야기하면서도 우유병을 깨뜨려서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 꼬마 배달부, 그 소년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렸어요. 만약 그 마른 아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고용주가 정한 작은 액수의 수당만 받으며 고달프게 살다 이윽고 일을 못할 만큼 몸이 약해져서 죽는다면...

"...공평하지 못하니까."

에데의 말에 카를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어요.

"그럼 물주들이 일꾼들과 함께 번 돈을 모두 모아 서로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공평하다는 거야?"

"그럼 프리드리히 씨의 책에 나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검댕투성이가 되어서 일하다가 부자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일찍 죽어버려도 된다는 거야?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밑천을 갖지 못했다는 걸 빼면 물주들이랑 똑같이 평범한 이웃들인데, 이게 공평하단 말이야?"

"만약 어떤 물주가 원래는 일꾼이었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기 공장을 차린 거면 어쩔건데? 그걸 뺏어서 아직도 가난한 다른 일꾼들한테 줄 거야? 설령 일꾼이 돈을 벌어서 물주가 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물주 집안에 태어났다고 해도 그건 안 돼. 훔친 게 아니라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죄는 아니잖아. 일꾼들이나 물주들이나 죄짓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인 건 마찬가지야! 모두들 법으로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법이야말로 모든 사람한테 공평한 사회의 기준 아니었어?"

카를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어요. 저도 모르게 어느새 큰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만사에 느긋하고 싸움을 싫어하던 자신이 만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친구한테 이렇게 몰아붙이듯이 말을 하다니. 에데가 혹시나 기분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돼서, 카를은 슬쩍 에데의 눈치를 봤어요. 에데가 기가 죽었거나 화를 내고 있으면 재빨리 사과할 셈이었죠. 에데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 아래를 보고 있었어요. 역시 기분이 나빴구나 싶어서 카를이 미안하다고 하려던 차에, 에데가 고개를 들었어요.

"만약에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실제로는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일인데 법으로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걸 지켜주는 법을 만든 거라면? 카를, 프리드리히 씨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몰라."

에데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지만 점점 목소리가 들뜨고 빨라졌어요. 후다닥 말을 마치고 나서는 두 사람이 말하는 걸 지켜보고 있던 로자 쪽을 돌아봤지요.

"로자, 내 말이 맞는 것 같아?"

로자는 생긋 웃었어요.

"첫 숙제치고는 괜찮은걸."

에데는 겸손하게 웃어보였어요. 은행에서 상사나 손님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지어서 익숙한 표정이었죠. 로자에게 미소로 답례를 표시하고, 에데는 허를 찔린 듯 멍하니 있던 카를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어요. 

"법이라는 힌트 고마워, 친구!"

"뭐, 뭘..."

"너무 기죽지 마, 카를. 에데의 대답도 완벽했던 건 아니니까. 내가 보기엔 운이 좋았어."

로자가 <서쪽 나라 일꾼들의 실태>를 책꽂이에 밀어넣으며 말했어요. 로자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카를은 역시 조금은 아쉬웠어요. 로자가 말한 대로 상식을 깨보려고 했는데, 결국 카를은 법은 옳은 것이라는, 상식이라기에도 다소 부족한 틀에 갇혀 실패한 셈이니까요. 중학교에서도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는데, 첫 수업부터 이래서야 앞으로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카를은 살짝 걱정이 되었어요.

"생각도 연습이 필요한 법이거든. 오늘부터 며칠간은 쉬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단계야. 체육으로 따지면 준비운동 시간인 거지."

로자는 책꽂이의 다른 칸을 향해 걸어가더니, 큼직한 책을 역시나 세 권 꺼냈어요. 첫 번째 책처럼 살짝 빛이 바랜 표지에는,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큼지막한 활자로 제목이 적혀 있었어요.

<고양이 한스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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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6

본편로그(앞부분) 2015. 2. 11. 02:58

"그 애는 다시 안 올거야, 에데."

<첫 번째 숙제>




 

에데는 책을 가볍게 넘겨보며 복도를 걸었어요. 특별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저 걸으면서 책을 읽는게 편했을 뿐이에요. 은행에서 가만히 앉아 몇 시간이고 숫자랑 씨름하던 에데에겐 가벼운 산책이 사색하기에 딱 좋은 취미였거든요. 에데는 발걸음에 맞추어 생각했어요. 돈이 없는 사람은 불쌍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 같은데. 크리스마스면 은행 앞에 놓인 구세군 냄비에 돈이나 옷꾸러미를 넣던, 모피 코트를 입은 아가씨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어요. 로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걸까요? 

그 때였어요.

쨍그랑!

집 밖에서 뭔가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에데는 반사적으로 창가로 달려갔어요. 밖을 내다보자, 사방에 하얀 액체가 튀어있는 가운데 한 아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아무래도 우유병을 깨뜨린 것 같았지요. 에데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었어요.

"아..."

아이는 에데를 보자 작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푹 숙였어요. 떨어진 우유병 때문에 무릎까지 우유로 흠뻑 젖어있는 꼴이 안쓰러워 보여서, 에데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물어봤어요. 

"이 집에 배달하려던 우유니?"

"네, 맞아요."

망연자실해 있던 아이는 에데의 말에 반짝 정신을 차린 듯, 우유 웅덩이 속에 흩어진 유리조각을 주워모으기 시작했어요.

"우유는 내일 다시 배달해드릴게요. 죄송해요."

대금은 제가 치를 테니까... 아이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유리조각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어요. 에데는 급히 아이를 말렸어요.

"깨진 유리는 위험해! 내가 치울테니 잠깐 앉아있어. 많이 힘들어 보이네."

정말이지, 아이의 초췌하게 패인 눈이나 말라붙은 입술은 보는 쪽이 다 힘이 빠질 만큼 처량해 보였어요. 어디 사는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숲속에서 마차를 타고 한참이나 달려야 나오는 이 집까지 무거운 우유병을 들고 오느라 고생했을 모습이 눈에 선했죠. 

"괜찮아요, 시간이 많이 늦어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는 바구니가 달린 묵직해 보이는 통까지 등에 지고 있었어요. 이 집 말고도 들러야 할 집이 많아보였지요. 에데는 문득, 이렇게 우유를 잔뜩 짊어지고 아침부터 배달을 다녀야 하는 아이한테 쏟아버린 우유 값을 치를 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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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가 서재를 나간 다음, 카를은 한참을 책을 붙잡고 씨름을 했어요.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불쌍한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일까요? 그럼 이 집의 주인인 프레드 씨부터 나쁜 사람이 될 게 틀림없지요. 설령 돈을 많이 갖고 있는게 나쁜 일이라곤 해도, 그렇다면 어쩌라는 말인가요? 돈 많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기라도 하란 말인가요?

"아, 이거 교회에서 하는 일이잖아?"

하지만 그건 교회니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자기한테 돈이 없다고 돈 많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뺏는다면 그건 강도질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프레드 씨의 책에 교회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로자한테 말했던 것처럼, 프레드 씨가 직접 부자들의 멱살을 잡아줄 것 같은 느낌만 들었지요. 프레드 씨는 옛날 이야기 속의 로빈이라도 될 셈인 걸까요?

끙끙대던 카를은 문득 로자의 숙제를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를이 로자한테 했던 말은, 자기한테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었지요. 지금 카를이 하고 있는 생각도 평소 카를의 상식과 어긋나지 않는, 솔직한 카를의 생각이었어요. 

'진실도 처음에는 상식의 껍질 밑에 숨어있는 법이지'

로자의 말이 떠올랐어요. 카를의 상식에 기반을 둔 생각은 새로울 게 없는 생각이지요. 방을 나가던 에데의 뒷모습도 떠올랐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지요. 함께 이야기를 나눌 다른 사람도 없는 이 방에서라면, 더더욱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진작 에데처럼 할걸. 카를은 살짝 후회하며 방문을 열었어요.

"...넌 누구지?"

문 밖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서 있었어요. 구레나룻과 목덜미 쪽이 약간 거뭇한 것 빼곤 온통 새하얀 머리카락은 중구난방하게 뻗쳐 있었고, 새카만 눈썹과 사정없이 쏘아보는 눈빛이 무시무시해서 카를은 등골이 서늘했어요. 이 남자는 카를을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카를은 직감적으로 눈앞의 이 사람이 집주인 카를 씨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오, 오늘부터 이 집에서 후원받게 된 카를...입니다."

카를 씨는 짙은 눈썹을 의미심장하게 찌푸렸어요. 얹혀사는 쪽의 카를은 슬쩍 눈을 들다가 자기를 훑어보는 듯한 집주인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어요.

"흠, 민나의 아들이군."

"어머니를 아시나요?!"

"자넨 모친이랑 좀 닮았나?"

카를은 혼란에 빠졌어요. 정체 모를 후원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도 너무나 뜻밖인데, 갑자기 이런 영문 모를 질문을 하다니요. 닮았냐는 건 또 무슨 소리일까요? 얼굴 얘기일까요?

"그런...것 같지는...않은데요."

카를 씨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어요.

"자네 모친께 좋은 일이네. 여기서 할 일이 끝났다면 나가주겠나? 서재에 책을 찾으러 온 거라서 말이야."

카를 씨는 복도 쪽으로 정중하게 팔을 뻗었어요. 원래도 나가려던 참이었지만 어쩐지 얼떨결에 쫓겨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카를은 로자의 숙제도 잊어버리고 닫힌 서재 문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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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오래 걸렸...어라?"

에데는 한 손에 우유가 든 컵, 다른 손에 몇 닢의 돈을 들고 대문을 열었어요. 하지만 우유가 스며들어 검게 젖은 땅과, 미처 줍지 못한 듯 곳곳에 박혀 반짝이는 작은 유리조각을 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우유 값을 내 주려고 했는데, 아이는 바쁘다더니 금방 떠나버린 모양이었어요.

"이거라도 마시고 가면 좋았을텐데..."

도시의 기숙사에서였다면 금방 찾았을텐데, 어제 막 도착한 집의 부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마침 어느 방의 침구를 정리하고 있던 렌헨을 찾아내 우유 한 잔 따라달라고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말았죠. 내일이면 그 아이가 다시 우유 배달을 올테니까, 그때라도 줘야겠다. 에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고 있던 우유를 마셨어요.

"그 애는 다시 안 올 거야, 에데."

맛나게 우유를 마시던 에데는 깜짝 놀라 돌아봤어요. 어느 새 로자가 나타나 대문에 기대어 서 있었어요.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아니, 그보다...안 온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앤 지난번에도 한 번 우유병을 깼었거든. 주인이 한번은 봐 줘도 두 번이나 손핼 보려고 하진 않겠지."

"우유 값만 메꾸면 될 거 아냐!"

"너 같으면 같은 값에 병도 안 깨뜨리고 발도 날랜 건강한 아일 고용하겠니? 아니면 우유 배달 아니면 할수 있는 일도 변변히 없을 것 같은 그 애를 계속 두고 쓰면서 손해를 감수하겠니?"

로자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어요. 에데는 절망적으로 손바닥 위의 동전을 내려다봤어요.

"우유 배달 일당이 얼마나 한다고..."

"소를 키우는 목장 주인도, 우유를 가공하는 공장 주인도 부자는 아니야. 다른 목장과, 다른 공장과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조금의 비용이라도 아껴야 하지."

"하지만...그건 너무..."

"나쁜 짓인 것 같아? 부자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내가 그렇게 말했지."

"너한테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범함 이상의 자비심을 강요할 권리가 있니? 너 하나의 호소로 그것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니?"

"아니."

"그래서 네 말은 틀렸다는 거야, 에데."

두 사람은 가만히 우유병이 흩어진 땅바닥과, 작은 일꾼이 우유를 짊어지고 사라졌을 숲속을 바라보았어요. 로자의 단어는 차가웠어요. 하지만 에데는 로자의 말에 마음 상하지는 않았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그리고 지금의 에데의 마음처럼, 슬펐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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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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