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2

본편로그(앞부분) 2014. 10. 15. 00:11





"당신들의 이 집에서의 계급적 위치를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드립입니다 이런 말 안 했어요>



비포장도로에 골반뼈를 착취당하면서 깊은 산을 기어올라간 에두아르트와 카를 두 사람은 날이 저물어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우중충한 저택 앞에 도착했어요. 생각보다 멀었던 터라 주머니에 든 푼돈으로 마차삯이 될까 싶던 차에, 저택 문을 열고 나온 금발의 메이드가 마부한테 나머지 삯을 치러줬어요. 눈이 깊고 눈썹이 처져서 순한 인상의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카를의 짐가방을 대신 들어주려고 했지만, 어디 메이드한테 그런 일을 시킬수야 있나요? 에두아르트는 이만한 크기의 집에는 당연히 있기 마련인 벨보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마차 문을 열어준 것도 도어맨이 아니라 이 메이드였지요.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궁금했지만 물어볼 계제는 아닌 것 같아 에두아르트는 입을 다물었어요. 일단 카를이 짐가방을 들기로 했고, 두 사람을 서재까지 안내해 준 메이드는 곧 프리드리히가 돌아올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나가버렸어요.

프리드리히가 누구지? , F.E씨겠구나.”

그런데 메이드가 집주인을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건가?”

그새 말을 놓게 된 에두아르트와 카를은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었어요. 무엇 하나 석연찮지 않은 구석이 없어서 조금 당황하고 있던 차에,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곧 깔끔한 외모의 신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지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원래 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회의가 늦어져서... 이 집을 관리하는 프리드리히입니다."

 신사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손을 내밀었어요. "카를입니다" "에두아르트입니다" 두 청년도 신사의 손을 잡으면서 제각각 인사를 했지요. 프리드리히 씨는 이 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관리인이고, 집주인인 카를 씨가 당신들의 후견인이 될 분이에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 분의 뜻을 이루는 데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프리드리히 씨는 멋대로 두 사람의 진로를 결정하면서, 자기 책상 서랍에서 카를과 에두아르트가 보낸 지원서류를 꺼내보았어요. 두 사람의 나이라던가 생일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읊으며, 사실과 맞는지 두 사람에게 확인을 구했지요. 에두아르트는 카를이 자기보다 한 살 많다는 것, 10월에 태어났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어요.

일련의 확인작업이 끝나자프리드리히 씨는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여행하느라 피곤했을테니 렌헨이 일러주는 대로 각자 방에 가서 쉬라고 말해줬어요.

"아 렌헨은 여기 도우미 얘기입니다. 본명은 헬레네예요. 우리 집안에선 모두가 평등하니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램프를 든 렌헨이 "프리드리히 말 들으셨죠? 우린 모두 서로 이름으로 불러요." 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을 한 방 앞으로 안내했어요. 한 방? 이렇게 큰 집인데 둘이 한 방을 쓴다구요?

 "저 혼자 청소하기엔 힘에 부치니까요. 사용되는 방은 최소한으로 해야죠"

렌헨은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단호했어요. 그녀의 이 집안에서의 계급적 위치는 메이드라는 직업이 주는 인상보다 높았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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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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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1

본편로그(앞부분) 2014. 10. 15. 00:08

'고래가 다 난다요....'

<의지가지 없는 처지에 초면인 사람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마루엥하우스 가는 두 사람>



에두아르트는 어릴 땐 그럭저럭 엄부자모 밑에서 괜찮은 교육을 받으며 자란 20대 청년입니다. 안타깝게도 중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지병으로 타계하셨어요. 본래 마음이 약하시던 어머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몇 달 후 뒤를 따르고 말았답니다급격히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에두아르트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집 근처 은행에 취직해 사환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6-7년을 그 바닥에서 구르며 웬만큼의 실전 금융업무 지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배움을 향한 아쉬움은 남아 있었지요. 어느날 퇴근 후 한 잔 하며 직장 선배에게 그 소회를 털어놓자, 선배가 그러고 보니 이런 기사를 본 적 있었다며 조간신문을 주섬주섬 꺼내 구석에 실려 있는 기묘한 광고를 보여주었어요

<학생 모집중. 배움에 뜻이 있는 15~25세 사이의 연고 없는 청년들에게 아래와 같은 조건 하에 생활 기반과 높은 수준의 정치경제학 교육을 제공합니다.

1. 신체 건강하고 부모, 형제, 친인척 등 연고자가 없을 것.

2. 후원자 자택에서 거주할 것.

......

관심있으신 분은 아래의 주소로 간단한 이력서와 신분증명, 가능하다면 주변인의 신원보증을 우편으로 보내주시길.>

은행 일은 그럭저럭 안정적이었지만 에두아르트는 역시 공부가 하고 싶었어요. 광고 내용이 조건이 너무 좋아서 수상쩍다는 것 빼곤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에두아르트는 신문을 보여준 선배를 보증인으로 해서 지원서를 보내기로 했어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보냈던 건데 며칠 후 답장이 왔지요. 하얀 편지봉투에 적혀있는 주소는 지원서를 보낸 주소는 아니었어요. 봉투 안에는 얼마간의 돈과 다음과 같은 쪽지가 들어있었어요.

<친애하는 에두아르트 . 보내주신 지원서는 잘 받았습니다. 기쁘게도 군께서는 저희가 찾고 있는 인재인 듯 합니다. 소정의 교통비를 동봉하오니 하기의 날짜까지 주변을 정리하고 병기된 주소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F.E.>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터라 이거 신종 사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진짜라면 더 망설일 것 없었지요. 에두아르트는 일단 직장에는 휴가를 내고 알량한 전재산이 든 여행가방을 들고 은행 기숙사를 나왔어요. 2인승 마차를 잡아서 앵초꽃 언덕까지, 라고 말하는데 등뒤에서 잠깐만요, 앵초꽃 언덕이라구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구일까요? 뒤돌아보니 에두아르트와 나이도 처지도 비슷해보이는 키 큰 젊은이가 서있었어요.

저도 거기까지 가는데, 괜찮으면 합승해도 될까요?”

무엇을 망설일까요? 어차피 마차는 2인승이고 둘이 타면 반값인데. 에두아르트는 마차에 오르는 청년을 슬쩍 훑어보았어요. 저쪽은 자신보다 조금 더 남루한 꼴에 단촐한 짐가방. 앵초꽃 언덕은 말이 언덕이지 꽤 숲이 울창한 산이에요. 주변에 특별히 마을이라 할 만한 것도 없는데 혹시 이 사람도 나처럼 F.E씨를 찾아가는 걸까? 에두아르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청년의 이름은 카를이라고 하고, 에두아르트처럼 도시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던 중 F.E씨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카를은 활기차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비밀스런 후원자를 만나기 전까진 의지할 상대도 말동무할 상대도 서로밖에 없다보니 에두아르트와 카를은 금방 친해졌지요. 목적지는 제법 먼 곳이라 가는 동안에 해가 지고 설상가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어두컴컴한 숲속을 마차의 램프 불빛 하나로 마음 달래며 두 청년은 덜컹덜컹 요란한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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